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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파우치’의 주인공(정확히 말하면, 수령의 주인공과 명명의 주인공이 구별되어야 하겠지만) 박장범 앵커가 KBS 사장이 됐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냉소하듯 답한다. “요즘 누가 KBS를 보냐”라고. 사람들에게 더 이상 영향력도 없는 공영방송, 누가 사장이 되든 대수냐는 뜻일 테다. 실은 KBS가 커다란 영향력과 함께 국민들의 삶의 일부이던 시절에도 그랬다. 국무총리 이름도 다 기억하지 못하는 마당에, KBS 사장이 누군지 알 턱이 없었다. 어차피 몇몇 자기가 되고 싶거나, 그가 되면 새마을금고전세금담보대출 어쩌나 싶은 몇몇 사람들만 발을 동동 구르는 자리였다. 채널도 넘쳐나고 볼 것도 많은 지금 시절에는, 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되든, 되어야 할 사람이 되지 않든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다. KBS가 동네에 굴러다니는 깡통 취급도 못 받는 분위기라지만, KBS 담보대출한도조회 의 1년 예산은 1조원을 훌쩍 넘는다.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편성하는 방송사 가운데에서는 아직도 가장 큰 규모이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자산도 제일 많다. 사장은 매년 2억~3억원 연봉을 받는다. 대전 MBC 사장이었던 이진숙 방통위원장의 경우를 자랑스러운 전례로 치자면, 새벽에 제과점을 가건 어디를 가건 사용 가능한 업무추진비 한도가 KBS 사장의 경우 연간 농협 4000만원 수준에 이른다. 또 필경 그를 사장으로 세우는 데 공이 있는 이들이 본부장급 임원이 될 테고, 세월호 다큐멘터리 불방과 이승만 다큐멘터리 편성 결정을 했던 부류의 사람들이 주요 보직에 앉을 테다. 진행자와 출연자를 결정할 권한이 제작진에 있지 않다는 게 새로운 표준(new normal)이 될 것이며, 제작 책임자에게 “이미 윗선이랑 다 이야기 신용대출 중도상환수수료 가 끝났다”라며 자신의 거취에 대해 당당하게 말하는 이들이 각종 프로그램의 얼굴을 장식할 게 뻔하다. 이런 와중에도 비제작 직군에 속한 일부 기자들은 그를 사장이 아니라 ‘선배’라고 부르며 직위에 주눅들지 않는 기자 정신을 자랑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어용방송보다 노영방송이 더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전직 교수 같은 이들이 앞다퉈 나서서 이를 정상적인 별내역 공영방송이라 일컬어줄 터라 뒷배도 든든하다.


이런 말로도 당신이, 당신의 그 냉소가 불편해지지 않을 수 있다. 하긴, 한 달에 2500원씩 뜯기는 수신료가 진정 ‘수신료의 가치’를 다하는지 진작부터 당신은 관심이 없었다. 수신료 분리징수를 한다고 해도 집안에 텔레비전 수신이 가능한 수상기를 갖추고 있다면 어차피 내지 않을 수 없는 돈이다. 당신은 예나 지금이나 그 뭉텅이 돈이 쓰이는 방식과 결과에 간여하지 못하니, 그 무력감을 욕설과 냉소로 되갚아주는 것 외에 달리 방법도 없긴 하다. 그 돈을 누가 어떻게 쓰든 그냥 뜯기는 ‘조그마한 머니’로 치부하는 게 그나마 정신 건강에 이롭기도 할 테다.

모바일 기기에 TV 수신장치를 단다고?

그렇게 해서 그 돈은 또 다른 이승만 혹은 심지어 박정희나 전두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로 흘러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주장이 정치적 다양성의 관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고 보는 이들에게 주요 보직이 주어지면, 그들은 그런 의견을 공유한 이들과 밥과 술을 함께하며 업무추진비를 요긴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 무력해진 KBS2의 광고매출이 줄어드는 만큼 TV조선이나 채널A, MBN 등의 광고매출은 늘어나거나 적어도 보전되는 상황이 더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쯤 되면, 우리 미디어 환경의 공적 마중물인 수신료를, 신자유주의적 적하 이론(trickle-down theory)을 입증해주는 기이하고 뒤틀린 전거로 삼아야 할 것만 같다.




TV 수신료는 1981년 이후 지금까지 2500원이다. 7월11일 서울 광화문우체국에 놓여 있는 고지서. ⓒ연합뉴스



이렇게 해서 공영방송 KBS와 수신료의 문제는 그들이 그렇게나 바라마지 않는 ‘남의 일’이 되어버린다. 이제부터는 KBS가 어떻게 비치건, 공영방송 제도가 어떻게 무력화되건, 자리에 있을 때 최대한 털어먹고 가는 게 그들에겐 제일 중요한 과업이 된다. 경영학에서 이야기하는 수확전략(harvest strategy: 가망이 없는 사업을 정리하기 전에 기존 수입원으로부터 최대한 현금을 뽑아내는 전략)의 사익 버전인 셈인데, 위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공영방송 사업의 건전한 기반은 약해지는 대신 수확한 현금은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게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구단주와 감독 사이에 일종의 ‘사인 미스’가 발생해버렸고 이것이 근시일 내에 교정될 것 같지가 않다. 구단주는 현금원을 교란해(수신료 분리징수) 기존 감독을 몰아내려고 했는데, 그렇게 몰아낸 감독 자리에 새로운 감독이 연이어 두 명이나 들어왔는데도 구단주가 현금원을 되돌려줄 생각이 없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신임 박장범 감독, 아니 사장의 고충 아닌 고충이 발생한다. 3년의 시간이 주어진 본인의 사익 실현 목적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까진 아니겠지만, 앞으로 3년 내내 적어도 시달리는 척, 고민하는 척은 해야 할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앞에는 계속 이 질문이 던져지게 될 테다. 수신료가 이대로 점점 더 말라붙게 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사장 후보자 시절 박장범은 “모바일 기기에 TV 수신장치를 달아 수신료를 물리면 된다”라고 답했다. 그게 말이 되느냐고 하니 “BBC도 그렇게 하고 있다”라고 응수했다. 워낙 BBC가 세계 공영방송의 대명사인 만큼 툭하면 BBC에서 근거를 찾는 일은 지겹도록 봐왔다. 신기하게도 뭐가 막히면 BBC를 들고나오는 버릇은 개별 사장 후보자나 정치인들의 이념적 성향과도 무관한 것 같고, 사장의 자질이나 비전과도 큰 관련이 없는 듯하다. 그만큼 고민이 없다는 소리다. 고백하건대 나도 그런 근거를 공급하는 일을 한동안 했다. 그래도 사정과 맥락을 봐가면서 BBC 사례를 적용해야 한다고 조언했고, 지금까지의 사장들은 대체로 그랬다. 한데 박장범 후보자의 대답은 그것과도 달랐다.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고, 따라서 적절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정확하지조차 않다. BBC가 10년 아니 20년 전부터 제공해온 독자적인 디지털 온라인 서비스의 규모와 수준을 안다면 나올 수 없는 소리이고, 그런 BBC조차 수신료 제도의 정당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걸 인지하고 다방면으로 대비해왔다는 점에서, 헛웃음 값도 못하는 처참한 수준의 답변이다.


KBS 사장은 어느 정권하에 어떤 이가 되었건, 1981년 이래로 40년 넘게 2500원에 묶여 있는 수신료에 대해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게 그간 불문율이었다. 적어도 거대한 KBS를 구성하고 있는 내부자들의 관점에선 더더욱 중요한 일이어서, 특정 사장이 조직 내에서 리더십을 가질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결정하는 관건이 되기도 한다.

공영방송에 대한 철저한 ‘무계획’

그나마 지금까지는 수신료 액수가 동결되어 있어도 수신료를 내는 대상 가구수가 지속적으로 늘어왔기에 유지가 가능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이제는 인구가 감소 추세로 들어갔고 1인 가구가 는다고 해도 텔레비전 수상기 없는 가구가 늘어가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광고매출은 하염없이 줄어들고, IPTV에서 콘텐츠 대가를 계속 더 뜯어내는 것 외에 끌어올 방법이 없다. 드라마는 들이는 돈에 비해 얻는 돈이 적어서 이제는 포기 상태에 이르렀고, 또 다른 효자상품이었던 예능에 광고를 붙여줄 광고주도 점점 희박해져가고 있다.




2월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녹화한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는 박장범 당시 KBS 앵커가 진행했다. ⓒ대통령실 제공



전임 박민 사장과도 또 다르게 KBS 내부 구성원 출신 사장이라면 이에 대한 장기적 대안과 단기적 방책을 갖고 있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단기적 방책 차원에서라도 윤석열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수신료 분리징수를 단행한 것에 관해 의견을 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일언반구도 없다. 국민의힘 현역의원이 말한 바처럼 어차피 적어도 이 정부하의 사장은 정권이 직접 결정하는 것이니 그 정부의 결정에 반하는 의견을 낸다는 건 목전에 둔 연간 3억원짜리 사장 자리를 제 발로 걷어차는 일이었기 때문인 걸까? 그래서 고작 꺼낸 대책이란 게 ‘모바일 시대에 맞게 모바일 기기에 수신료를 징수하는 방법’이다. 이는 단기적 대응법일 수도 없을뿐더러 장기적 대안은 더더욱 아니라는 점을 생각할 까닭도 없었을지 모르겠다. 어차피 사장 자리의 꿈은 용산에서 대통령과 독대함으로써 시작되었고, 어쩌면 대통령보다도 더 강력한 인사권을 지닌 누군가와 연결됨으로써 완성될 수 있다고 믿었을 것 같다면, 이 또한 너무 박절한 짐작일까?


3년에 이르는 지난한 기간을, 공영방송 연구자로서 치미는 열화를 누르며 지켜본 결과, 이 정부와 여당은 공적을 세운 이들에게 나눠줄 전형적인 ‘전리품’으로서의 공영방송을 장악하는 것까진 한다 쳐도, 제 나름의 방식으로라도 잘 활용해볼 생각이 없다는 확신이 든다.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 사례에서 명확히 보여줬고, ‘박민의 방송 KBS’ 1년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 바처럼, 이들은 공영방송에 경쟁력을 부여할 그 어떤 계획도 없다. 여러 먹음직스러운 자리를 나눠줄 전리품으로만 쓰면서, YTN처럼 싼값에 팔아넘기거나 정권이 바뀌더라도 돌아갈 자리를 남겨놓지 않도록 철저히 무력화하는 게 이들의 계획 아닌 계획이다. 설혹 모종의 ‘사인 미스’가 지속되고 있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 왔으면 신임 사장이 모를 리 없다. 처음에는 의도치 않게 사인이 어긋났을지 몰라도, 이제는 서로 눈 찡긋찡긋 손발 왔다 갔다 하면서 무의미한 신호만 주고받는 시늉을 하는 게 목적이 됐다.


따라서 청문회 단계에서 후보자 박장범이 벌인 해프닝은 잊는 게 좋다. 그는 그냥 그 시간과 자리를 대충 때우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한 것일 뿐이다. 사장이 된 그가 공영방송 KBS를 위해 할 수 있거나 하고자 하는 것도 없을 테니, 그나마라도 공영방송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이들은 다른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과연 수신료 제도는 정권과 무관하게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수신료 폐지와 공영방송 축소가 답인가? 아니면 다른 길이 있는가? 질문하며 말이다.

정준희(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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